
현대 기술 산업에서 에반 스피걸(Evan Spiegel)은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스냅챗(Snapchat)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메시지가 사라지는 ‘휘발성’의 가치를 세상에 설파했지만, 정작 그 자신의 삶은 그 어떤 CEO보다도 견고하고 반복적인 ‘영속성’ 위에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억 명의 사용자가 찰나의 순간을 공유하며 디지털 세계를 부유할 때, 그 시스템을 만든 창조자는 새벽 5시의 적막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조각한다. 스피걸의 일상은 거대한 기술 제국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루틴인 동시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자극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창의성을 지키려는 한 개인의 필사적인 저항이다. 우리는 그가 설계한 하루의 구조를 통해, 혼돈 속에서 중심을 잡는 리더의 내면 기술을 엿볼 수 있다.
- 새벽 5시, 에반의 시간: 주도권의 회복
에반 스피걸의 하루는 세상이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리더들이 생산성을 위해 아침을 활용하지만, 스피걸에게 이 시간은 생산성 그 이상의 의미, 즉 ‘주도권’을 상징한다. 그는 이 시간을 ‘에반의 시간(Evan Time)’이라 명명했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타인의 요구와 세상의 소음에 반응하는 대신, 그는 자신만의 의식으로 하루를 연다. 첫 번째 순서는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하는 45분간의 크리야(Kriya) 명상이다. 그의 아내이자 웰빙 전문가인 미란다 커(Miranda Kerr)의 영향으로 시작된 이 명상은 스피걸에게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한 의사결정과 거대한 조직의 압박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코어를 단련하는 훈련이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고백할 만큼 명상을 중시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고 하루를 시작할 정신적 에너지를 비축한다.
명상이 끝나면 그는 곧바로 신체적 각성을 위한 루틴으로 전환한다. 스트레칭과 유산소 운동으로 신체의 감각을 깨운 뒤, 그는 다소 의외의 행동을 이어간다. 바로 강황과 페퍼민트가 함유된 페이스 마스크를 하는 것이다. 아내의 뷰티 브랜드 제품을 활용하는 이 스킨케어 루틴은 단순한 미용 관리가 아니다. 건조한 피부를 관리하는 실용적인 목적과 더불어, 차가운 마스크의 감각을 느끼며 자신을 돌보는 행위는 그가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를 정립하는 과정이다. 5시부터 7시까지 이어지는 이 2시간의 의식은 외부 세계가 그에게 침범하기 전, 그가 먼저 자신을 정의하고 하루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다.
- 타임 블로킹(Time Blocking): 몰입을 위한 방벽
오전 7시, 가족과의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스피걸은 스냅(Snap Inc.)의 CEO로서의 자아로 전환한다. 그러나 그의 업무 방식은 일반적인 경영자들의 숨 가쁜 일정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타임 블로킹(Time Blocking)’이라 불리는 철저한 시간 관리 기법을 통해 자신의 하루를 구획한다.
타임 블로킹은 하루를 ‘회의’, ‘창의적 사고’, ‘개인 시간’과 같이 명확한 목적을 가진 블록으로 나누는 것이다. 스피걸은 수동적으로 쏟아지는 이메일이나 즉각적인 요청에 반응하며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미리 정해진 블록 안에서만 특정 업무를 수행한다. 이는 업무 간의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고, 한 가지 주제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는 “타임 블로킹은 끝없는 회의나 산만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며, 생산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일주일에 2~3일을 온전히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보낸다는 사실이다. CEO가 경영 전반을 챙기는 것을 넘어 제품 디자인의 최전선에 머무르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는 이 시간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업무라고 표현하며, 스냅챗의 핵심인 디자인과 제품 혁신에 깊이 관여한다. 이는 그가 단순히 회사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제품의 본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헬리콥터 조종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아침 비행을 통해 물리적으로 땅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시각을 확보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창의적 블록의 확보는 스냅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거대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독창적인 AR 기술과 하드웨어 비전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인물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 크레딧: https://www.flickr.com/photos/techcrunch/54569930107/, TechCrunch · 라이선스: CC BY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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