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선택하라. 그리고 마지막 5%에 집착하라."
2014년 10월, 텍사스 오스틴의 AMD 본사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다. 당시 실리콘밸리 분석가들은 이 회사를 투자 부적격 상태로 분류했다. 부채는 22억 달러에 달했고 주가는 2달러 선을 맴돌았으며, 한때 인텔을 위협하던 서버 시장 점유율은 2퍼센트 아래로 추락해 존재감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직원 4분의 1이 회사를 떠났고 본사 건물도 매각 후 다시 빌려 쓰는 처지였다.
이 난파선의 키를 잡은 인물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출신 리사 수(Lisa Su)였다. 취임 이틀째, 그녀는 전 직원에게 경영자가 아니라 기술자의 언어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화려한 비전 선포도, 재무 구조조정 계획도 아니었다. 기술의 본질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녀는 일반적인 경영 회의 대신 기술 검토를 조직 운영의 중심에 두었고, 디테일의 마지막 단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습관으로 무너져가던 반도체 기업을 다시 세웠다. 그리고 2026년 현재, AMD는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기업으로 부상했다.
- 기술자의 본능, 마지막 완성도의 힘
리사 수의 리더십을 관통하는 철학은 IBM 시절에 형성된 ‘마지막 완성도’ 개념이다. 그녀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실제로 작동하는 물건을 만드는 일에 매료되었다. 1990년대 IBM 연구소에서 구리 배선 기술을 개발할 당시, 연구실의 성공과 대량 생산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간극을 체험했다.
젊은 연구원이었던 그녀는 개념 검증이 끝나자 새로운 연구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상사는 제품이 매장 진열대에 오를 때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깨달았다. 제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가 가장 어렵고, 그곳에 진짜 경쟁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율 문제, 신뢰성 시험, 예기치 못한 오류를 잡아내는 고된 단계가 승패를 가른다는 점이었다.
이 철학은 훗날 AMD 최고경영자가 된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녀는 재무 수치보다 기술 일정의 실행 가능성을 집요하게 따졌다. 직원들에게는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성능을 정해진 시점에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에서는 화려한 표현 대신 병목 원인과 수율 저하의 근본 이유를 묻는 심층 토론이 이어졌다.
- 전략적 거절, 하지 않을 것을 정하다
리더의 역할은 무엇을 할지 정하는 것만큼 무엇을 하지 않을지도 결정하는 일이다. 2014년 당시 업계의 관심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사회 역시 저전력 모바일 칩 시장 진출을 권했다.
그러나 리사 수는 단호했다. “우리는 모바일 회사가 아니다.” 그녀는 AMD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점유율이 거의 없던 회사가 세계 최고 슈퍼컴퓨터를 목표로 삼는 일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반도체 미세화 속도가 둔화되는 흐름을 읽었고,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 시장이 장기적인 승부처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 선택은 칩렛 구조라는 과감한 기술 전략으로 이어졌다. 경쟁사가 하나의 거대한 칩에 모든 기능을 집적할 때, AMD는 여러 개의 작은 칩을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조롱을 받았던 이 방식은 수율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면서도 성능을 끌어올리는 해법이 되었다. 젠 아키텍처는 인텔의 독주를 멈추게 했고 AMD를 다시 중심 무대로 복귀시켰다.
실무 적용 관점에서 핵심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루틴 설계다. 하루 단위로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고, 의사결정 근거를 팀과 공유하며, 실행 이후 학습을 빠르게 반영하면 전략의 일관성이 높아진다. 또한 리더의 개인 습관을 조직 시스템으로 번역할 때 성과가 안정적으로 축적된다. 결국 기술 리더십의 본질은 천재성보다 운영의 지속 가능성에 있다.
인물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 크레딧: https://www.flickr.com/photos/amd/16340234721, AMD Global · 라이선스: CC BY-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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