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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 거장들의 일상 루틴 23 – 구글 클라우드의 CEO 토마스 쿠리안(Thomas Kurian)

    토마스 쿠리안 인물 사진

    실리콘밸리의 신화는 종종 차고에서 피어난 자유분방한 천재성이나,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질서 속의 창의성으로 묘사되곤 한다. 후드티를 입고 밤새 코딩을 하며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 유레카를 외치는 천재들의 이미지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혁신가의 초상이다. 그러나 구글 클라우드를 이끄는 토마스 쿠리안의 서사는 이와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혼돈보다는 질서를, 즉흥성보다는 정교하게 설계된 규율을 신봉한다. 구글이라는 거대한 창의적 조직에 그가 이식한 것은 바로 예측 가능한 '시스템'과 철저한 '루틴'이었다.
    적자에 허덕이며 시장 점유율에서 뒤처져 있던 구글 클라우드를 연매출 수백억 달러 규모의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비결은 화려한 비전 선포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그의 루틴, 고객의 목소리를 데이터처럼 분석하는 집요함,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설계하는 냉철한 시간 관리 습관에 있었다. 본 장에서는 토마스 쿠리안이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구축했는지, 그리고 그 규율이 어떻게 거대 기업의 운명을 바꾸는 동력이 되었는지를 그의 루틴을 중심으로 해부해보고자 한다.

    1. 6시 1분의 법칙: 규율의 기원

    토마스 쿠리안의 루틴은 구글의 캠퍼스가 아닌, 인도 케랄라주의 작은 마을 팜파디와 뱅갈로르의 기숙 학교에서 잉태되었다. 화학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쌍둥이 형제인 조지 쿠리안(현 넷앱 CEO)과 함께 성장했다. 그의 유년 시절을 지배한 것은 어머니 몰리 쿠리안의 엄격한 가정교육이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단순히 공부를 잘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녀가 강조한 것은 '태도'와 '규율'이었다.
    가장 상징적인 일화는 저녁 식사 시간의 규칙이다. 쿠리안 형제들이 동네에서 크리켓 경기를 하다가도, 저녁 6시가 되면 반드시 귀가해야 했으며, 6시 1분에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단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 강박적인 시간 엄수는 어린 토마스에게 시간이라는 자원이 타협 불가능한 약속임을 각인시켰다. 만약 6시 1분을 넘긴다면? 그날 저녁 식사는 없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스럽지만 단호한' 훈육은 훗날 그가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CEO가 되어서도 회의 시간을 초 단위로 준수하고, 약속된 결과물을 기한 내에 반드시 만들어내는 실행력의 원천이 되었다.
    또한, 그의 가정환경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배제한 실무적 루틴을 형성하게 했다. 당시 보수적인 인도 사회 분위기와 달리, 쿠리안 형제는 직접 요리하고 청소하며 집안일을 분담해야 했다. 이는 리더가 되어서도 '손에 기름을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졌다. 그는 오라클 재직 시절, 엔지니어링 본부장이라는 고위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버그 추적 시스템에 직접 접속해 개별 티켓의 처리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하는 이 '딥 다이브' 루틴은 유년 시절의 가사 노동 경험에서 비롯된 겸손함과 실용주의가 발현된 것이다.
    쌍둥이 형제 조지와의 관계 또한 그의 루틴 형성에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대학(IIT 마드라스, 프린스턴)을 다니고,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17세의 나이에 낯선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완벽한 페이스메이커였다. 서로의 학업 성취를 비교하며 경쟁하는 동시에, 이민자로서 겪는 문화적 충격을 공유하며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토마스 쿠리안은 형제와 함께 프린스턴 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며, 지적 능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학문적 루틴을 완성했다.

    1. 전략적 사고의 구조화: 맥킨지에서 오라클까지

    대학 졸업 후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토마스 쿠리안은 '구조화'라는 새로운 루틴을 장착한다. 그는 런던과 브뤼셀, 뉴욕을 오가며 복잡한 경영 환경을 논리적인 구성 요소로 분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이 시기 그가 체득한 것은 '문제 해결의 알고리즘'이었다. 어떤 난해한 문제도 데이터와 논리로 잘게 쪼개면 해결 가능한 단위가 된다는 확신, 이것이 그의 사고 루틴의 핵심이 되었다.
    이후 오라클에서의 22년은 이 사고 루틴을 극한의 실행 루틴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그는 오라클의 제품 개발을 총괄하며 3만 5천 명의 개발자를 이끌었다. 오라클 시절 그의 루틴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했다. 그는 12시간마다 주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거나, 인도 개발팀과의 시차를 이용해 24시간 개발 사이클이 멈추지 않도록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TK(토마스 쿠리안)가 무엇을 물어볼지 모르니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조직에 불어넣었다. 그의 루틴은 조직 전체를 하나의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이자 통제 장치였다.
    하지만 오라클에서의 마지막은 그의 루틴이 단순한 맹종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클라우드 전략을 두고 창업자 래리 엘리슨과 충돌했을 때, 그는 자신의 논리적 결론(오라클 소프트웨어를 타사 클라우드에서도 구동해야 한다는 개방성)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수립한 전략적 루틴과 신념이 조직의 방향성과 맞지 않을 때, 그는 과감히 22년의 터전을 떠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규율이 외부의 권력이 아닌 내부의 원칙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1. 구글의 재설계: 공감과 효율의 하이브리드 루틴

    2019년, 구글 클라우드의 CEO로 부임한 토마스 쿠리안 앞에는 거대한 도전이 놓여 있었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지만,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데는 서툴렀다. 엔지니어들은 기술적 우위에 심취해 있었고, 영업 조직은 고객의 비즈니스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쿠리안은 이곳에 '고객 공감'이라는 새로운 루틴을 이식하기 시작했다.
    루틴 1: 고객의 언어로 번역하기
    쿠리안은 매주 전 세계 주요 기업의 CEO 및 CTO들과 만나는 일정을 고정적으로 배치했다. 그는 이 미팅에서 "우리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명하는 대신, "당신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중 어디가 막혀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도이치은행, 포드, 홈디포 등의 현장을 방문하여 그들의 업무 흐름을 직접 관찰하고, 이를 구글의 엔지니어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기술적 혁신을 평가할 때도 "이것이 고객의 매출을 얼마나 늘려주는가?", "고객의 비용을 얼마나 줄여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회의의 기본 루틴으로 삼았다.
    루틴 2: 하이브리드 소통과 투명성
    그는 구글 특유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면서도,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소통 루틴을 확립했다. 그는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와 같은 대형 행사뿐만 아니라, 내부의 '올핸즈 미팅'을 통해 직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로는 이스라엘 프로젝트와 같은 정치적 이슈로 내부 갈등이 격화되었을 때도, 그는 회피하기보다는 원칙에 입각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조직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과의 마찰이 있었고 단호한 조치(해고 등)를 취하기도 했지만, 이는 그가 조직의 규율과 목적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수해야 했던 리더로서의 고독한 결단 루틴이었다.

    인물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 크레딧: https://www.dvidshub.net/image/7426971/cso-raymond-and-google-cloud-ceo-kurian-panel-discussion-asc22, Eric Dietrich · 라이선스: 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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